<최사장 대마도 상륙기> "일본인에게 존경받는 한국인이 되고싶어요"

입력시간 : 2019-02-28 20:11:06 , 최종수정 : 2019-03-13 12:46:27, 영남교육문화 기자
대마도에서 망중한에 빠진 미도리게스트하우스 대표 최용호사장님

딸아이가 유치원에 다니고 있을 때 무렵이니 벌써 20년 가까이 된 이야기다. 당시부터 나는 자연이 좋아 가족들을 데리고 대마도에 자주 놀러 다녔다. 여름이면 미우다해수욕장옆에서 캠핑하며 아이들과 며칠동안 바닷가에서 놀곤했다. 아침에 눈뜨자마자 바다에 풍덩 뛰어들고, 아침밥 함께 준비해 먹고, 쉬었다가 또 바다에서 놀고. 물놀이가 힘들어지는 오후에는 한가하게 걸어서 마을에 나갔다. 소박한 마을 식당에서 저녁을 사먹고, 슈퍼에서 장을 보고 밤하늘을 보며 걸어서 돌아오곤 했다. 아내가 함께 대마도에 가지 못한 적도 있었다. 이때는 식재료를 준비해서 나 혼자 아이들을 데리고 갔다. 맛있게 밥 챙겨주는 게 서툰 아빠지만 아이들은 미우다해수욕장이 좋아 따라 나섰다고 생각한다. 당시만 해도 미우다에는 손으로 모래 속 10센티미터 정도 깊이를 훑으면 비단조개를 손쉽게 채취할 수 있었다. 사람들이 힐링’ ‘힐링말하기 전에도 깨끗한 자연을 찾아 그 속에 몸을 담그고 지내길 좋아했던 것이다.

 

청정환경을 자랑하는 대마도는 자연 속에서 지내기 좋은 곳이 많은데 아소베이파크 캠핑장, 아유모도시자연공원 등은 자연환경이 정말 뛰어나다. 이즈하라에서 좀 더 남쪽에 있는 아오시오노사토 캠핑장의 작은 캐빈에서도 가족들과 함께 지낸 적이 있다. 돌멩이가 둥근 몽돌해변인데, 여기서도 물안경을 끼고 돌에 붙은 고동을 채취했었다. 메뚜기도 많고, 거미도 많고, 멧돼지도 많고, 꽃사슴도 많고. 아유모도시자연공원에서는 원시림 사이로 얼음같이 차가운 물이 흘러내린다. 뜨거운 햇살에 노출돼 붉게 변한 피부가 자연스럽게 진정될 정도로 계곡 물이 차다. 오히려 몸이 추워져서 햇볕을 받아 따듯해진 바위에 몸을 붙이고 한참 있으면 좋은 곳이다.

 

가족과 대마도를 여행 때는 렌트카를 빌린 적이 없다. 2~3시간은 예사로 걸어 다녔다. 오랜 시간 걸으며 자연과 만났다. 사람이 없는 한적한 길, 그 속에서 자연의 일부가 된 우리 가족 네 명. 대마도 현지 어민이 운영하는 민박집에서 숙박한 적도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는 자연과 함께하는 저 예산 여행이었다. 젊은 부부가 아이 둘 키우려니 빠듯한 살림살이에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을 것이다. 조금의 불편을 감수하고 몸을 움직이면 얼마든지 즐거운 여행이 되었다. 덕분에 아이들은 자연과 함께하는 것을 좋아하고, 거미도 별로 무서워하지 않게 자라났다.

 

대마도와의 실질적인 인연은 대마도 친구를 얻으면서 시작되었다. 캠핑장에서 일하고 있던 40대 노총각이었는데, 도쿄에서 대학을 공부한 후 부모님이 계신 고향에 돌아와 있었다. 버스가 끊겨 곤란한 상황이었는데, 그는 자기 일을 중단하고 30분간 차를 몰아서 나를 목적지까지 데려다 주었다. 이후 대마도를 찾을 때마다 그가 일하는 캠핑장에 들렀고, 길게는 일주일씩 체류하며 그의 일을 돕기도 했다. 특히 그가 일하던 곳의 사장과도 친하게 되어 두 사람을 데리고 제주도 여행을 하기도 했다. 제주도처럼 너무 개발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지만, 대마도의 훌륭한 자연을 조금 더 활용하면 대마도가 더 좋은 곳이 될 수 있는 좋은 방법들이 있음을 보여주기 위한 취지였다.

 

이후 대마도의 지역 유지인 그 사장은 나에게 일본 정부가 매물로 내놓은 공매 물건을 소개해주었다. 읍면 합병으로 더 이상 사용하지 않게 된 일본 정부 소유의 공무원 관사였다. 방이 11개 있어서 숙소로 운영하기에 적합했다. 일본 정부의 공매 물건은 한국인에게는 참가 자격이 주어지지 않았다. 때문에 일본 책을 보면서 대마도 현지에 주식회사를 세웠고, 회사 이름으로 공무원 관사를 인수했다. 현지 회사 명의로 공무원 관사를 인수하는 것이 확정됐을 무렵 20년 가까이 다니던 회사를 그만뒀다. 이후에 아내에게 6개월치 정도의 생활비만 남기고 홀로 아무런 두려움 없이 대마도로 향했다.

 

리모델링을 거쳐 숙소를 오픈했지만 몇 달동안은 손님이 거의 없었다. 혼자서 도시락을 준비해 MTB자전거를 타고 차가 다니지 않는 대마도 곳곳을 다녔다. 미지의 숲길을 일일이 답사하며 다녔고, 그 때마다 꽃사슴 멧돼지들과 조우했다. 불필요한 지식이 가득한 머릿속을 비우 듯, 혼자만의 시간에 집중했다. 이후 숙소는 점차 궤도에 올랐고, 3년이 지난 후에는 부산에서 오는 여객선이 도착하는 히타카츠 항구 인근에 새 숙소를 지어서 운영하게 되었다.


최용호대표가 대마도 히타카츠에서 운영하는 미도리게스트하우스에서는 전기자전거를 대여해주고 있다.


사람들은 나에게 왜 대마도에서 살게 되었는지 묻는다. 아마도 뭔가 보이지 않는 압박에서 탈출해 자유를 찾기 위해서였던 것 같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스트레스 받을 일도 적고, 다른 사람을 덜 의식해도 된다. 창의적으로 생각하며 스스로 노력하면 되는 곳이라 생각했다. 대마도에는 북섬과 남섬이 있고, 북섬의 넓이는 거제도 보다 더 큰데 인구는 고작 1만명 정도에 불과하다. 인구 30명 정도의 거제도와 비교한다면 사람이 너무 적게 사는 과소지. 여기에 섬 인구의 40%를 차지하고 있는 고령자, 그리고 아이들을 제외하면 대형 마트 외에는 사람을 보기 힘들 정도인 곳이다.

 

숙소를 찾는 손님이 늘며 이제는 옛날과 같은 100% 자유는 더 이상 누리기 힘들게 되었다. 일이 늘어나면서 점차 숙소운영에 몸이 묶이게 된 것이다. 지금은 숙소를 찾는 손님들에게 좋은 일을 한다는 마음으로, 최대한 도움을 주기 위해 노력하며 지내고 있다. 선업(善業)을 쌓는다는 생각으로. 그리고 일본 주민들로부터 존경받는 사람이 된다는 목표도 세우고 있다.

 

세종실록으로 기억되는데, 옛 문헌에는 동래부(옛 부산)에 살던 주민이 대마도에 넘어갔다가 먹고살기 힘들어 다시 돌아와 주민으로 다시 받아달라고 동래부 관헌에 청원을 하는 내용이 나온다. 맑은 날이면 맨눈으로도 보이는 섬이니 가난한 사람들 가운데는 희망을 품고 대마도로 넘어간 경우가 적지 않았을 것이다.

 

과거 대마도는 어업에만 의존하는 척박한 곳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시대가 달라졌다. 오히려 개발이 되지 않은 깨끗한 시골같은 곳이기 때문에 청정 휴양지로서의 큰 잠재력을 가진 곳이 되었다. 깨끗한 바다와 산 등 청정자연이 남아있고, 숲이 울창해 미세먼지 공해도 없다. 외로운 섬 대마도에서도 찾아보면 할 일은 많다. 자신이 인생의 참주인이 되어 스스로 찾아서 만들어가는 삶이다. 대마도가 더 좋은 곳이 될 수 있도록 작은 기여를 하며 살 생각이다. 또 일본인들로부터 존경받는 한국인이 된다는 작은 꿈을 갖고 살아가고 있다.

 

                                                                               최용오/ 대마도 현지법인 ()태산, 미도리게스트하우스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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